오른 달, 右月
너는 죽고 싶다고 했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 숨 쉬는 것도 힘들다고 했었지. 너는 내 옆에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기분이라고 했어.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했어. 나는 아직도 네가 준 쪽지를 펼쳐보지 못했어. 쪽지를 잡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흘러서 네가 쓴 글씨가 엉망이 될 것 같았거든.
오늘의 달은 어떤 모양일까. 달, 달이 보고 싶어. 이렇게 말하면 닿을까. 차라리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내가 너무 어두운 사람이라 네가 도망갔나, 생각하기도 했었어. 너는 꽤 오래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너와 함께 살던 이 작은 집에서 홀로 울기만 했어. 네가 있어야 할 곳에 너는 없고 흔적만 남았을 뿐, 나는 그 흔적을 감히 건드릴 수도 없었어. 꼭 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았거든.
종종 네가 오지 않을 거란 불안함에 내가 혼자 울고 있을 땐 형은 항상 네가 금방 돌아올 거라는 말 밖에 안 해. 너는 저기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했어. 네가 워낙 즉흥적인 사람이라서,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안 보내줄 것 같아서,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러 몇 년 떠난 거라고 했어. 사실 거짓말인 것 같아서, 형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불안했어. 그래도 얼마 전에 보낸 사진은 잘 받았어. 내가 보낸 목도리는 잘 하고 다니네. 거긴 추운가봐, 그치? 그래, 나는 네가 없는 게 꼭 너와 이별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네가 지구 반대편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그걸로 됐어. 또 보고 싶다고 네가 꼭 나를 두고 떠난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나는 괜찮아.
나는 요새 매일 꿈을 꿔.
“…란아!”
그래봤자 또 같은 꿈이야.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꿔. 네가 나오는 꿈.
“세란아!”
너는 나를 부르고, 저 먼 곳에서 나를 부르고, 나는 가까워 보여 손을 뻗어보지만 너는 닿질 않아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어. 아무리 걸어도, 걷다가 뛰어도 가까워질 수 없는 건 왜일까. 그런 나를 보고 너는 마냥 웃으며 손짓하고 마침내 가까워지면 너는 사라지더라.
“바보야, 사랑해.”
단지 저 말만 남긴 채, 항상 나에게 해주던 그 말만 남긴 채, 너는 사라져. 너는, 너는 그냥 담배연기마냥 금세 사라져. 그럼 난 이 곳에 혼자 남아 네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데, 너는… 너는 결국 다시 오지 않아.
무서워…, 혼자 있는 건 싫어. 나는 네가 없는 이 공간이 너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너무 싫어서 미칠 것 같아. 맞아, 나는 하루도 너 없이 살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네가 나를 두고 혼자 유학을 갔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어. 꼭 네가 나를 두고 다른 사람 곁에 간 것 같아서 슬펐어. 응, 나는 사실 안 괜찮아. 네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게 슬퍼.
“세란아!”
“………”
“세란아?”
“어,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밥 먹자.”
“어….”
꿈에서 깬 일상은 네가 없는 것 말고는 다를 것이 없어. 세영이형과 먹는 식사, 함께 하는 하루.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형도 네 이름을 입에서 담는 일이 없어졌어. 내가 잘 웃지 않으니 매일 장난을 치던 형도 장난을 치지도, 잘 웃지도 않아. 차라리 괜찮은 척 마냥 웃어주면 좋을 텐데. 내 잘못일까? 내가 네가 집을 좀 오랜 시간 비운다고 형한테까지 괜한 심술부리고 있는 걸까? 나도 형이나 너처럼 밝은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냥 네가 잘 알던 대로 불안하기만 해서, 네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워. 단지 여행이라고 했지만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사진 한 장만 보내는 네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봐 나는 여전히 너무 무서워.
“난 네가 없으면 하루도 살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꼭 나보다 오래 살아줘. 알겠지? 아, 너무 당연한 말인가?”
“그게 뭐야…”
“아, 몰라! 얼른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줘! 오래오래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내 옆에 있어주겠다고!”
“유치하게 그게 뭔데….”
“그래서, 안 해줄 거야?”
“……약속.”
“좋아, 약속!”
문득 너와 했던 약속이 떠올라 형이 일하러 나간 시간에 나는 또 혼자 울고 네 사진만 들여다보겠지. 내 옆에 꼭 붙어있겠다고 했으면서, 나를 두고 잠시도 어디 가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도 없이 갔어.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나도 허락할 수 있는데.
근데 있잖아,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언제와?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얼마나 오래 해야 끝나는 거야? 종종 형은 나한테 쓸데없는 집착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해. 월아, 이게 내 집착이야? 그게 싫어서, 그래서 넌 말도 없이 그 곳에 갔니?
“오늘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달이… 달이…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요.”
“달이라… 매일 같은 소리만 하시는 것 같은데, 매일 밤 달을 올려다보나요?”
“매일 봐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근데 내가 찾는 달은 하늘에 떠있는 달이 아니에요, 선생님. 내가 찾는 달은… 더 밝고 웃는 게 마냥 사랑스럽고… 내가 좋다며 내 머리스타일까지 따라하던 그런 멍청한 달이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있어주겠다고 했던, 그런 아이었는데.
기억나? 우린 어딜 가든 함께 했었어. 내가 매일 바라보고 있는 달도 항상 함께 봤었어. 낮에 뜨는 달도, 밤에 뜨는 달도, 새벽에 뜨는 달도 모두. 그래도 아무리 달빛이 밝아도 너만큼 빛나지는 않았는데.
“달이 참 예쁘다.”
“……응.”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네가 더 예쁜 것 같아서.”
“아, 몰라!”
“아, 아파.”
그 날의 너는 보름달에 양손모아 소원을 빌었어. 뭘 빌었냐고 물어봐도 너는 대답하지 않았지. 있잖아, 나는 네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어. 네 소원, 이루어졌을까? 아니, 혹시 네 소원이 내 곁을 떠나는 건 아니었을까… 요새는 이런 생각도 들어. 그러니까… 아니, 누가 말도 없이 혼자 그렇게 멀리 여행가라고 했어? 보고 싶어 죽겠잖아. 나는 하루씩 날짜를 세어보고 네가 올 날만 기다려. 너는 내가 보고 싶진 않을까…. 형은 1년이 지나면 네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겨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러고 보니 나 너무 어린 애처럼 너 기다리면서 보채는 것 같다. 그치? 근데 너 없으면 잠시도 불안한 걸 어떡해. 그래도 네가 올 거라는 말을 형한테 들으면 또 마냥 웃게 돼. 그러니까 말은 하고 갔어야지. 아니면… 나랑 같이 가지 그랬어. 지구 반대편에 혼자 위험하게 가면 어떡해.
그래도 오늘은 꽤 기분이 좋아. 오늘은 외출하는 날이거든. 형이 휠체어도 태워준다고 했어. 네가 그렇게 집을 나가고 나서 우리가 항상 가는 곳이 생겼거든. 너도 알지? 거기 꽤 많은 사람들이 와. 나는 그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져. 너랑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세란아, 준비 됐어?”
“응, 가자!”
“……그래. 출발하자.”
너도 알지만 형은 운전을 엄청 잘해. 너는 형이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어. 나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운전을 배울 수 없었지만, 너는 형한테 운전을 배우곤 했었는데. 그 때 너 운전 엄청 못한다고 형이 잔소리 했잖아. 엄청 재밌었는데, 그치?
아, 산이다. 산이 보여. 이제 산으로 올라가면 거의 다 온 거야. 여기 다람쥐도 꽤 많아. 지금도 있을까? 아, 여기서 자라는 고양이도 있다고 했어. 형이 항상 고양이 간식을 챙겨오거든. 오늘도 챙겨왔을 거야. 여기 엄청 신기한 것 같아. 항상 나를 두고 간 네가 너무 미웠는데, 여기 오면 너를 이해할 수 있거든.
“자, 세란아. 내리자.”
“응, 내리자.”
형은 항상 여기 오면 기분이 안 좋아 보여. 형도 꽤나 네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걸까? 너랑 함께, 우리 항상 셋이서 먹을 거 싸다가, 맥주도 챙겨다가 이런 산에 소풍오고 했었으니까. 아, 여긴 일종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래. 너처럼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여행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음식을 놓고 제사를 지내고 절도 해. 맞아, 형이랑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너를 위해 여기 온 거야. 고맙지?
여기 이상한 항아리 같은 곳에 사진을 프린트해놓고는 다들 와서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해. 우린 네 항아리를 보러 왔어.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 거, 이것 때문이야. 여기 항아리가 엄청 많거든. 너처럼 공부하려고 멀리 여행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엄청 많아서 신기하고 놀랐어.
매일 네가 보고 싶어서 우는데, 나는 여기 와서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제사 지내면 기분이 좋아. 이제 반년만 더 기다리면 네가 온다고 형이 그랬으니까. 이제 여기 오는 게 너무 즐거운 거 있지? 아, 근데 너 나중에 오면 엄청 웃길 걸? 형은 항상 여기 오면 음식을 차려놓고는 울어. 그 모습이 어찌나 바보 같은지 몰라. 내가 집에서 너 보고 싶다고 우는 것도 저렇게 바보 같을까? 하여튼 형도 네가 엄청 보고 싶은 건 확실해.
아, 오늘은 문득 잊고 있었던 네가 기억날 것 같아. 너는 나보다 어두운 사람이었어. 너는 살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어. 너는 몸이 안 좋은 사람이었어. 항상 숨 쉬는 것도 힘들어 했었지. 오늘은 날이 이상해…. 아파하던 네 모습이 갑자기 잊고 있던 것이 올라오듯 떠올랐어. 이 곳에서 이렇게 형을 따라서 운적은 오늘이 처음인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 너는, 너는 종종 자해도 했어. 나는 그런 네가 무서웠지만 나는 네가 너무 좋았어.
항아리에 붙여진 네 사진, 유독 예쁘다. 그리고 네가 최근에 보내줬다는 사진을 꺼내어 봤어. 나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나와 같은 푸른색도 초록색도 아닌 눈에, 빨간 목도리. 응, 맞아. 항아리에 붙여진 사진이랑 내가 받은 사진, 같은 사진이었지.
이제 반년 남았어. 반년이 지나면 너는 돌아온다고 했어? 반년이 지나면 나는 이곳에서 네 사진을 보고 울기로 했어. 근데 사진을 겹쳐보니까 아무래도 반년 더 이렇게 모르는 척 하기도 무리다. 어때, 월아? 우월아, 월아. 네가 간 곳은 천국이야? 그곳에선… 그곳에선 아프지 않은 거야? …그 달 아래서 빌었던 네 소원은 천국에 가는 거였지.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지친다, 이제. 부디 그 소원 잘 이뤘기를 바라.
이제 네가 그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믿는 바보 같은 짓, 그만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더 고통스러워서 이제 더는 못하겠어. 미안해, 미안해….
[항상 이 시기면 다시 일어나야지. 살아야지. 그렇지? 나를 해쳤잖아. 그럼 한 달은 이 따끔거림으로 살 수 있어. 이런 내가 무섭기만 하니, 너는? 그래도 너는 나를 사랑해줬어. 내 옆에 있어줬어. 너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는 내게 다가올수록 빠져든다고 했어. 너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내게 손을 뻗은 건지, 이제는 묻고 싶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좀 더 많이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이제 나는 갈게. 살고 싶어졌어. 살아야지.
너는 부디 오래 죽어줘, 그 곳에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의 전부, 나의 유일한 빛.
나는 그저 너의 어둠이었어.
나는 그저 너의 右月이었어.]
너는 죽고 싶다고 했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 숨 쉬는 것도 힘들다고 했었지. 너는 내 옆에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기분이라고 했어.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했어. 나는 네가 준 쪽지를 펼쳐봤어. 눈물이 쪽지 위로 떨어져서 글씨가 번져갔지만 나는 네 글씨체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었지.
반년동안 놓아주지 못해 미안해.
잘 자, 좋은 꿈 꿔.
부디, 아프지 말고 예쁜 꿈만 꾸길 바라.
나의 전부, 나의 유일한 어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