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묻어줘요.
어머니의 유언은 그게 전부였다. 병으로 점점 말라죽은 어머니의 시체는 한 때 마을을 휘저은 명문 게이샤의 말로라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했고, 그 초라한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도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뿐이었다. 참으로 덧없는 죽음이다. 나는 그리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어머니는 끝까지 고상하게 가는구나.”
울지는 않지만 우는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린 아버지는 낡은 검을 꽉 쥐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건 저 검이 만들어지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라 했었다. 한때는 땅에서 휘둘러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던 날카로운 검이, 이젠 관리를 안 해주면 금방이라도 못 쓰게 될 정도로 낡아버렸다니. 세월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가자, 코우메.”
“네. 아버지.”
어머니 손에서 길러진 나는 마이코가 되는 걸 거부했다. 단정한 기모노를 입고 샤미센을 연주하는 어머니는 좋았지만,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낭인과 게이샤의 사이에서 태어난 내게 게이샤의 길을 버리면 남는 건 무엇인가. 물론 굳이 부모의 직업을 따라 갈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내가 아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부장수의 아내나 농부의 처가 되는 것 보다는 이렇게 낭인이 되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어머니보단 아버지의 재능을 더 많이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1년을 넘게 연습해도 곡 하나를 겨우 연주하는 게 고작이던 샤미센과 달리 검술은 시작한지 한 달이 되자 검을 잡는 것도 제법 모양새가 나오게 되었다. 목도로 연습하던 시간도 잠시, 철이 들고 더 이상 아버지도 곁에 없게 되었을 때쯤엔 난 진검으로 원하는 것은 뭐든 베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아아, 잿빛 하늘이네.
양이전쟁에서 죽은 아버지의 유언은 어머니보다 짧았다. 그도 그럴게,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긴 말을 남기겠는가. 아버지와 떨어져서 지내느라 그 유언도 사망소식도 늦게 전해 들었던 나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신기한 기분이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시체는 양지 바른 곳에 친구들과 함께 묻었네.’ 내게 소식을 전해준 아버지의 지인은 낡은 검을 내게 내밀었다. 유품치고는 참으로 살벌하지만, 낭인인 내겐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겠지. 나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검을 칼집에서 뽑았다.
도저히,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상태의 검이 아니다. 버려야 할 정도로 이가 빠지고 더러워졌지만, 유품인 이상 버릴 순 없지. 아니 유품이 아니더라도 버릴 수 없다. 이건 내 부모의 흔적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서, 그게 그 검을 계속 가지고 다니는 이유인가?”
“그래, 코타로.”
길고 긴 이야기를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는 얼굴로 들은 당신이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지금은 천인들과 싸우며 매일 적의 목을 베고 피부를 찢는 나날이지만, 기본적으로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니 내 이야기에 슬퍼해 주는 거겠지.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단 표시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적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물론 쓸 수가 없어서 가지고만 다니지만. 와키자시라서 정말 다행이야. 타치였다면 번거로웠을 텐데.”
“그런가, 흠. 미안하네.”
“뭐가?”
“괜한 것을 물은 게 아닌가 싶어서.”
피에 젖은 장발을 아무렇게나 정리한 그가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사과 할 필요는 하나도 없는데. 하려던 말을 삼킨 나는 저 멀리서 동료들의 시체를 정리하고 있는 긴토키를 불렀다.
“긴토키, 여기는 대충 정리했어.”
“응? 아아. 돌아가서 보자고. 먼저 가.”
“신스케랑 타츠마는?”
“나도 몰라!”
뭐 어차피 그 둘이라면 어디 가서 죽을 인간들이 아니다. 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자들이었으니까. 코타로와 나는 안심하고 안전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발 바닥에 엉겨 붙는 다른 종족의 피와 살점은 역겨웠지만 우리는 죽음에서 빗겨나간 승자였다. 아마 살아남은 모두가 땅을 더럽히는 피가 제 것이 아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가끔 생각하곤 해.”
“응?”
“그러니까, 아버지랑 어머니가 남긴 유언에 대해서.”
갑자기 말의 주제를 바꿨지만 당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응.’이라는 대답을 내놔주었다. 그래. 나는 당신의 이런 무신경한 다정함을 좋아했지.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리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하늘이 보이는 곳에 자기를 묻어달라고 하셨지. 그냥 양지바른 곳도 아니고, 하늘이 잘 보이는 곳.”
“그게 이상한가?”
“이상하지는 않지만,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 싶은 생각은 들어서.”
“아아.”
그는 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금 이 나라를 집어삼킨 세상에서 하늘이란 마냥 긍정적인 이미지만을 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에는 내가 곁에 없었으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잿빛 하늘이라는 건 아마 무언가의 비유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가끔 쓰던, 시 구절처럼.
“코타로.”
피가 스며든 신발이 무거워,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올려다 본 하늘은 옅은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 구름이 흘러가고,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이른 오전의 하늘은 어째서인지 저승의 것 마냥 차갑게만 느껴졌다.
“혹시 이 전쟁 중 내가 죽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주겠어?”
싸우는 것이 질색할 정도로 싫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적을 죽이다 보면 모든 것이 그저 힘겹게 되는 법이다. 전쟁이란 그런 거지. 누구의 것이든 목숨이란 무쇠처럼 무거워, 그걸 거둬가는 사람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니, 죽어서도 나의 적들이 온 하늘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전쟁 중에 죽는다면 더더욱.
“…그 부탁은 들어주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네.”
“어째서?”
“나는 자네를 나보다 먼저 죽게 할 생각이 없으니까.”
아아, 그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가.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당신은 본인이 죽게 된다 해도 날 감쌀 사람이지, 날 죽게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구나. 응.”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평화롭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 까지 산 뒤엔 그렇게 해주겠네.”
“그래, 그래. 상냥하기도 하지.”
“…뭘 그리 웃는가?”
“아무 것도 아냐. 자, 얼른 가자 코타로.”
조금 있으면 저 하늘도 좀 더 선명한 색의 푸른빛으로 뒤덮이겠지. 그 때엔, 모두 모여 간소하고도 미지근한 아침밥을 먹자.
유언 대신에 바로 코앞의 일을 생각하자, 옛날 일 때문에 흐트러진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