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소재(자살)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어쩌다가 한번,네가 사라지는 꿈을 꾸곤했다. 그 꿈이 왜 그렇게 무섭고 소름 끼치는지 모르겠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인데. 네가, 나에게는 늘 소중한 네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장마가 다가오는 여름이면 날씨는 덥다 못해 후덥지근했다. 너는 늘 그 날씨를 이기지 못해서 녹았다,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은 것처럼 흐물흐물했다. 흔히 ‘고양이가 녹았다’와 비슷한 표현이 아닐까. 어쨌든 너는 여름을 별로 반기지 않는 듯 했다. 그래, 그래서 그런지, 너는 이번 여름을 떠나버렸다. 이 계절을 떠나기 위해서 학원의 옥상 위에서 없는 날개를 펼쳐서, 날아가버렸다.
책상 위에 놓인 여러 송이의 하얀 국화꽃에 눈이 한 번 갔다. 저기가, 누구의 자리지? 어수선한 교실의 분위기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과 조용하게 꽃을 내려두고 가는 학생들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불안한 눈으로 제 친구들을 찾았다.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하루카와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는 토모치카, 손으로 눈가를 가린 나츠키, 눈시울이 붉은 마사토. 다른 한명이 더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 애도 끅끅거리면서 울텐데. 그는 애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마사. 그…..”
말을 이어야 하는데 입은 의지와는 다르게 닫혔다. 요루는? 아직 안 왔어? 물어봐야 하는데 계속 입은 꾸욱 누가 누른 듯 열리지 않는다.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마,마사. 겨우 입을 열어 그의 친구를 부르면 후두둑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결국 그도 울음을 터뜨렸다.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 소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링고는 하루종일 울었던 건지 눈가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 앞에 앉은 학생들 역시 그와 같은 상태였다. 링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많이 혼란스러울텐데… 불러서 미안해, 얘들아.”
“아닙니다. 그보다, 하실 말씀이…?”
늘 침착했던 마사토의 목소리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교무실은 조용해서, 아직도 훌쩍이는 누군가의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사실,....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링고는 다시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울음이 전염이라도 되듯이 하루카가 다시 훌쩍였다. 링고는, 말을 이으려고 해도 계속 나오는 눈물에 말이 끊겼다. 그의 옆자리인 류야가 결국엔 나섰다.
“이렇게 하다간 내년쯤에 말하겠다. 같이 들은 거라 내가 말해도 상관은 없을거다. 혹시 최근에 에이사카에게 고민을 들어준 적, 있나?”
짧은 침묵의 뒤에는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요. 다섯 학생의 답은 똑같았다. 류야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에이사카가 뛰어내리기 전에… 학원의 상담실에 들렀었어. 상담일지에는 진로에 관한 상담,이라고 쓰여있긴 하지만 상담 선생의 말로는 진로고민과 함께 우울한 감정도 함께 말했다고 했었는데…”
우울한 감정은 그녀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늘 활짝 웃으며 다니는 그녀에게는 우울하다,라는 말보다는 활기차다,밝다 라는 말들이 더 잘 어울렸다. 막 피어난 꽃같은 미소를 짓는 아이인데, 어째서?
“자,잠깐만요! 류야 선생님! 요루는 …”
“그런 녀석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거면 집어치워. 잇토키, 원래 가면을 쓴 사람의 감정은 알 수 없는 법이야.”
넌 한번이라도 그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라도 해봤나?
그 말에는 오토야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대답할 수 없었다. 늘 싱글벙글 웃으며 다니는 요루미에게 고민이 있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오히려 고민은 요루미가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어두운 표정의 하루카에게 먼저, 나츠키에게 먼저 다가간 그녀였다. 그럼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나? 먼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홀로 있는 방에서 울진 않았을까? 룸메이트도 없이 혼자서 방을 썼던 요루미라 기숙사에서의 상태는 알 수가 없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고민이었을까. 얼마 전 도서관에서 보았던 표정이 떠올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던 표정은 조금 울상이었다. 보고있던 것은 공모전의 결과, 그러니까 지원했던 회사의 합격여부가 아니었을까. 6월부터 요루미는 열심히 준비했었으니까. 지나가던 나는 그걸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왜 그랬을까. 모르는 척 말이라도 걸었어야 했는데. 내가 말을 걸었더라면 너는 지금쯤… 또 가면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
“오토야!!!!”
“....아, 쇼.”
옥상 문이 시끄럽게 열리고 누군가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쇼였다. 그 역시 불안한 표정이다. 그의 표정의 원인은 오토야일까 그녀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요루미를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건지, 그 옆에 남겨진 오토야를 걱정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한건 쇼 역시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오토야는 애써 웃으며 말을 꺼냈다.
“쇼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마.”
“그럼…. 옥상에는 왜 올라왔는데?”
“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서.”
우리에게, 나에게 말하지도 못했던 말을 숨기고 끙끙거리며 여기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몇번이고 그 생각을 했다. 요루미가 그랬던 것처럼, 옥상에 올라오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막상 올라오자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초여름의 더운 바람을 맞으면서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혹시 울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는 온갖 생각을 하다가 쇼가 그의 이름을 두어번 쯤 불렀을 때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만 내려가자, 오토야. 손을 잡아 이끄는 쇼의 뒷모습은 누군가와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