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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드림 합작

노래의 왕자님

미카제 아이 x 현비파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After Secret의 시간대로부터 50년이 지났습니다.

 

   먼저 죽는 건 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병으로 앓고 사고로 다치는 일의 연속이었다. 매번 아이는 무사한 나를 보며 안도했다. 지금 나는 그가 50년에 걸쳐 느껴야했던 절망을 체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 쪽에선 그가 온전히 죽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계의 몸을 가진 그는 데이터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변화하는데 홀로 하나의 시간 안에 머물러 있다. 아이가 차라리 감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조금 나았을까, 이기적이게도 가끔 생각하고 만다.

   아이의 몸은 이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현존하는 과학 기술로는 점점 진화하는 그의 감정이 쌓이는 것을 더 담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때 나는 아이에게 깃든 ‘감정’을 기적이자 그의 영혼이라고 표현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내게 알려주며 웃었다.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던 박사는 이제 없고 그의 지식만이 남아있었다. 세계의 모든 지식을 데이터베이스로 가진 아이였지만, 작금의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멘테넌스 담당 기계와의 접속을 끊고 아이가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가 옆에 앉은 나를 보았다.

   “왜 나왔어? 힘들 텐데.”

   “보고 싶어서.”

   “들어가서 쉬어.”

   “아이랑 같이 갈래.”

   “이럴 때 보면 어린아이 같다니까.”
   내 어리광은 그의 죽음을 알고 나타났다. 나는 소멸할 거야. 앞으로 1년 2개월 3시간 1초. 방금 3시간이 됐네. 여느 때처럼 덤덤한 말투였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그와 함께 있고 싶어서 어리광 부리기 시작했다. 일도 쉬고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더 이상 밖을 돌아다닐 힘 같은 건 남아있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이는 매번 옆에서 나란히 걷는 나를 보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에게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연인이자 아내였으며, 인간 탐구의 연구 대상이었다.

   아이가 침대에서 내려와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잡고 지탱하여 일어난다. 그에게 기대듯이 걷는다. 항상 나를 위해 유지되어 오던 34. 3도의 미지근한 온도는 이제 너무나 뜨거워서 절로 눈물이 났다. 이제 예정된 시간까지 딱 3시간 1초가 남았다. 아, 방금 1초가 지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주방에 섰다. 그가 좋아하는 홍차를 우리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위험하다고 말렸다.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넣고 전원을 켰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넣고 두 개의 찻잔과 레몬 머랭을 차반에 담아서 가져갔다. 천천히 움직이는 나를 보고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이제 상당히 붉어졌다.

   “그대로 앉아있어.”

   “아냐, 뜨거운 걸 들고 있다가 쏟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비파는 지금 이걸 버틸 만한 힘이 없잖아.”

   “괜찮아. 아이야말로 앉아있어.”

   탁자 위에 차반을 올려놓고 잔을 내려놓았다. 미리 덜어놓은 찻잎을 망에 덜어서 주전자에 넣고 우렸다.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물을 가만히 보았다.

   “이거 마시고 나서 같이 목욕할래?”
   “목욕?”
   “응, 오랜만에.”
   몸에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턱까지 올라왔다. 간신히 침을 삼키고 왼쪽 자리에 앉은 그를 향해 웃었다. 그러자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자고 어제 생각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물을 데우겠다며 아이가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탁자 위에 머리를 숙였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누르고 또 눌렀다.

   욕실에 들어갔을 때, 훈증기가 피부에 맞닿았다. 이렇게 뜨거운 물로 괜찮겠냐는 말이 목을 메웠다. 간신히 침을 삼키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가 먼저 욕조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앞에 앉았다. 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맞닿은 피부가 서로의 체온을 전해주었다. 그의 몸은 촛불과도 같았다.

   “이거 다 하고 나면 머리, 묶어줄래?”
   “지네머리로 땋은 다음에 묶는 거지?”
   “오랜만이어서 비파에겐 낯설지도 모르겠는걸.”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얀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눈앞이 뿌옇게 물드니 마지막 날엔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1년 2개월 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사랑해? 수백 번도 더 했던 말이었다. 고마워? 새삼스러웠다. 미안해? 슬퍼할 터였다. 잊지 않을게? 주말 드라마도 아니고.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닿았다. 목이 메어서 잘못 말을 꺼내면 울 것 같았다.

   “이렇게 같이 욕조 안에 들어온 게 3개월하고도 1일 1시간 2분만이네.”

   “벌써 그렇게 됐어?”
   “더 많이 같이 있고 싶었어.”

   “응, 나도.”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명했다. 칠십이 넘어 노쇠해진 내 것과 너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도 그랬지만 시간이 무척이나 잔혹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이 굉장히 잔인한 사람 같았다. 아이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계속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계속 내 죽음 후를 준비했고 그것을 숨긴 적도 없었다. 나는 이기적이었고 아이는 그럼에도 날 사랑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사랑은 죄를 쌓는 일종의 업이라는 말이 깊숙하게 다가왔다. 어깨와 등에 닿은 피부는 조금 딱딱해서 계속 옆에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울고 싶어졌지만 눈을 계속 깜박였다.

   목욕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서 화장대 앞에 아이를 앉혔다. 그 뒤에 서니 내 시선 조금 위에 그의 머리가 있었다. 작아진 내 키와 변함없는 그의 앉은키. 나는 어깨에 찰랑이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만히 보다가 손을 가져갔다. 왼쪽 머리카락을 잡아서 세 가닥으로 나누고 조금씩 땋아갔다. 20년 전, 라디오 방송 활동에서마저 완전히 은퇴한 후엔 외출할 때에만 했던 머리 스타일이었지만 그마저도 2년 전에 그만두었다.

   “일주일 후면 샤이니 기일이지?”
   “벌써 그렇게 됐네. 그러고보니 하루카가 찾아간다고 했었지.”

   “란마루도 같이 가겠네.”

   “레이지씨나 다른 사람들도 다들 갈 거라고 들었어.”

   “비파도 가.”
   “왜?”
   “내가 없으면 비파는 밖으로 거의 나가질 않잖아. 오랜만에 햇살도 맞고 선선한 바람도 느끼면서 갔다 와. 내가 없으니 힘들겠지만.”

   숨을 삼켰다. 아이는 여전히 덤덤한 말투였다.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새도 없었다. 아이가 내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리를 묶는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계속 울음을 삼켰다. 비파. 거울 속에서 아이가 나를 부르는 얼굴엔 걱정이 서려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머리끈으로 머리를 고정하자마자 아이가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얼굴을 잔뜩 적신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가 내 어깨를 잡아 끌어안았다. 다시 맞닿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도에 결국 나는 다시 울어버렸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서로를 보았다. 예정 시간까지 40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일부러 시계는 보지 않았지만 아이가 시간을 셌다. 우리는 남은 시간동안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즐거웠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 친구들과의 추억, 사무소에서의 기억, 사랑이를 만나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있었던 일들까지.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부은 눈두덩이를 애써 접어가며 웃었다. 이제 마지막인 것 같아. 그 말을 하고 아이는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였다. 내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는 눈을 감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
   대답이 없다.

   “아이, 자?”
   익숙하던 기계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자는 거지?”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썹을 훑고 속눈썹을 간질였다. 반듯한 콧날을 어루만지고 입술을 따라 선을 그었다. 귓바퀴를 따라 내려와 귓불을 만지고 마침내 그의 볼을 만졌을 때 차가워진 그의 체온을 느꼈다.

   “아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입술이 떨렸다.

   “아이.”
   눈꺼풀은 열리지 않았다. 손으로 밀어 올려서 그의 푸른 눈동자를 보았다. 이제 흐릿해져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유리알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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