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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는 정확하게 청년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요코하마 항구의 버려진 컨테이너 안. 좁은 공간 안으로 사람 둘을 밀어 넣은 무리는 머잖아 컨테이너의 문을 닫고 손잡이와 손잡이 사이에 든든한 쇠사슬을 두르고 자물쇠를 달았다. 쇠사슬이, 그리고 자물쇠가 한 번 컨테이너의 표면을 두드릴 때마다 골이 함께 울린다. 칸자키는 손끝을 방아쇠 위로 살포시 올린다. 너덜너덜한 코트를 걸친 청년, 다자이는 그와 함께 머리 높이로 양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침묵했으나,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는 터였다. 아마도 그랬으리라고 칸자키는 생각했다.

 

“오랫동안 당신을 찾아다녔어.”

 

또박또박 그 어떤 어절도 놓치지 않고 년이 지껄인다. 밑도 끝도 없는 마냥 시커먼 머리칼을 둥그런 모양으로 올려 묶은 채였으나 아주 오랫동안 써왔던 고무 끈은 이미 수명을 넘기고도 버려지지 못했다. 머리칼이 서로 몸을 비비며 흐트러진다. 바닥으로 당장 곤두박질칠 것처럼 툭 떨어져 공중에서 흔들거리다 움직임을 멈춘다. 눈을 감고 있던 다자이가 슬그머니 한쪽 눈꺼풀만을 들어 짙은 밤색 눈동자 속으로 그녀의 모습을 욱여넣는다. 무표정 이후로 입꼬리만 살짝 끌어올린 웃음은 누가 보아도 꾸며진 것이었으나, ‘드디어 잡았다.’는 환희에 빠진 여성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읽히고 있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녀가 발을 바닥에 딛는다. 얇고 높은 굽의 바닥이 맞부딪히며 텅텅하는 소리를 낸다.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손에 점차 힘이 빠짐을 느낀다. 이렇게 쉽게 잡아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일이 술술 잘 풀려서 괜찮은 것인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당장 앞에 놓인 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자신을 이해시키며 납득하기를 몇 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청년의 방향으로 놓인 총구가 이제 그의 이마에 완전히 닿아있었다. 정적을 깨고 입을 연 건 다자이였다.

 

“카나리아처럼 아름다운 여성분께서 지난 몇 년간 내 뒤를 꾸준히 쫓아왔다면 설령 여기서 개죽음을 당한다고 해도 포트 마피아를 빠져나온 성과는 어느 정도 챙겼다고 보아야겠지. 코이즈미 양.”

 

웃음기를 삼킬 의사는 없어 보인다. 목소리라고 드러난 표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눈을 느긋이 깜빡이다 머잖아 눈을 가늘게 접어 웃는다. 칸자키는 확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자이를 죽일 수 있다. 컨테이너의 안은 잠겨 있고, 그가 별도의 장치(예컨대 폭탄 따위)를 준비해두었다면 그만큼의 디메리트 또한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카드가 무엇이든 다자이는 완벽하게 그녀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벼랑 끝에 선 도망자.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손짓 한 번에 추락할 수 있는. 그것이 다자이 오사무가 처한 상황이었다. 승기를 쥔 쪽은 본인이었다. 그랬으나, 그는 마치 무언가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비굴하게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옛정을 운운하며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으며 여유로움을 연기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상황은 여전했음에도, 칸자키는 어쩐지 승세가 기울어지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 웃기는 소리. 초조함을 삼켜내며 중얼댄다. 총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마 중간에 총구를 지긋이 짓누른다. 여전하네, 자넨. 당신의 목소리도 끔찍할 정도로 사랑스러워, 여전히. 짤막한 대화 몇 마디가 오갔다. 다시금 찾아온 침묵에 칸지키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자네만 좋다면 나를 놓아주어도 괜찮은데. 그가 지껄인다.

 

“보스의 명령은 절대적이야, 멍청한 남자 모가지 하나 살려 보자고 내 모가지를 걸어 놓을 수는 없지.”

“조목조목 맞는 말이라 따지고 들 수가 없는걸.”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영광이라며 덧붙이는 소리는 대충 흘려보낸다. 뿌옇게 안개가 찬 머리를 말끔하게 헤집으려 애를 쓰다 결국 포기하고야 만다. 처음부터 쓸어낼 수 없는 감정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흉터가 남아있을 왼쪽 발목이 당신이 웃어 보임에 따라 시큰거린다. 등을 밀쳐내던 손과 얼얼하게 열이 오르던 뺨, 상처 위로 스며들던 눈물 따위를 떠올려낸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그녀가 고개를 바로 들고 다자이와 시선을 마주한다. 다자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묻는다.

 

“왜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는 단지 보이지 않을 총구 끝만을 따라 눈깔을 굴린다. 총의 몸체를 손으로 잡아 제 이마를 힘주어 짓누른다. 칸자키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벌어지지 않는 입술은, 딱 붙어 갈라진 입술은 침묵의 표시다. 그가 선택한 것은 침묵이었다. 아니, 그녀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는 끝까지 배신자로서 남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칸자키가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한결 밝아진 듯, 그렇지 않은 듯 애매하게 텅 빈 눈을 다자이는 들여다본다. 머지않아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사람이었던 것은 한순간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한낱 고깃덩어리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발을 바닥에 붙인 채 꼿꼿하게 서 있던 청년이 반동으로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치솟는 선혈에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배신자가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어. 끝을 희미하게 잘라내며 그녀가 속삭였다. 목숨마저도 빼앗기고 내던져지기 마련이지. 허연 피부 위로 붉은 물이 튀겨 있었다. 그녀는 충동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손을 뻗어 다자이의 시체를 들고 온몸에 피 칠갑이라도 하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쫓았던 일이 당신에게 있어 목숨과 맞바꾸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았을까. 들고 있던 총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굳게 닫힌 문 쪽으로 향한다. 강한 힘으로 문을 두드리며 그녀가 소리친다. 날 꺼내줘. 이 뭣 같은 곳에서! 당신의 향만큼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피비린내가 옷으로부터, 살갗으로부터 일렁이며 올라와 코끝에 맴돈다.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향이었노라고, 이것이 당신이 가진 죽음의 향인가. 끔찍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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