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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TO - カンタレラ AU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치노세 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오늘도 어김없이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다. 요즘 저택은 유산 상속 문제와 가주 승계로 한창 시끄러웠고 그런 어지러운 흐름에 끼어들어 한몫 챙기려는 사람 또한 많았다. 불분명한 내용의 유서는 어느샌가 훼손까지 되어있어 죽은 후작의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눈치 싸움이 격해졌지만 가주는 오이카와가 이어받을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일까, 상속 건으로 저택을 찾은 사람들은 미래의 가주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자주 얼굴을 내밀곤 했다. 물론 오이카와는 그까짓 돈 몇 푼 챙기겠다고 이 먼 곳에 위치한 저택까지 오는 사람들을 반기진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뻔뻔하게 웃는 낯짝으로 시커먼 속셈을 가린 채 손을 내밀고 눈을 맞추며 인사를 청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오이카와는 그들로 인해 생긴 두통을 이유로 들어 혼자 있는 일이 잦았다.

   사용인을 전부 물리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가려는 오이카와의 귀에 두 개의 구두 소리와 조잘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익숙한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근래엔 들어본 적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니 여자 쪽은 보나 마나 저택에 찾아온 손님일 게 뻔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와이즈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쉴 때 누군가를 데려온 적이 없었는데. 생각이 멀리 가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열리는 문에서 걸어오는 두 얼굴을 보고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안녕하세요, 오이카와 도련님."

   붉은 벨벳 리본으로 보기 좋게 묶어 올린 검은색 긴 머리, 분홍색 눈동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결혼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던 첫사랑의 얼굴을 이런 시기에 이 저택에서 보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오이카와로선 그러고 싶지 않아도 여러 가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의 오이카와는 두려움과 그녀를 향한 의심보다 재회의 기쁨이 앞섰다. 

   "그렇게 딱딱하게 부를 필요는 없잖아."

   오이카와가 생각보다 길었던 세 사람의 침묵을 깼다.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라고 말하며 웃는 루의 모습을 보니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동시에 새로운 불안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를 보고 올라가는 자신의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며칠을 루와 꼭 붙어 지내며 오이카와는 그녀와 수백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때 이야기들, 소식이 끊긴 후의 이야기들로 즐거운 때를 보낸 그는 한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마저 사라진 것을 느꼈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심장을 찔렀다. 루를 바라보는 이와이즈미의 눈빛이 자신의 눈빛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오이카와는 답지 않게 조급한 마음만 자꾸 들었다. 셋은 어릴 때부터 자주 저택에서 만나 놀았던 사이였다. 언제부턴가 루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열일곱쯤 되어서는 간간히 들리던 소식들도 끊기다시피 했지만 그녀는 오이카와의 세계 중 가장 깊은 곳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이와이즈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둘은 종종 저택 정원에서 꽃을 엮어 만든 조그만 화관 중 어느 것을 루에게 씌울지에 대해 다퉜던 것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정했던 루는 두 개의 화관을 모두 쓰고 웃어주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녀의 웨딩 베일을 벗기고 키스를 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구두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오이카와는 난생처음 루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고 그 거짓말은 잘 먹혀들었다. 성인이 된 후에 만난 건 처음이니 셋이서 와인이나 마셔보잔 말로 불러냈으니 루는 오이카와의 계획을 의심조차 못할 것이다. 난 어쩌다 이런 선택까지 하게 된 걸까.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잿빛 후회가 맴돌았으나 이미 루의 잔에 독을 부은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루, 나는 널 눈앞에서 놓칠 바에야 차라리..."

   오이카와가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한 순간 문이 열리며 루가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술이 채워져 있는 잔 하나와 오이카와의 손에 들린 잔을 본 루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메는? 잔이 두 개뿐이네?"
 
   이와이즈미는 오지 않는다. 애초에 부른 적이 없으니 올리가 없다. 오이카와는 잔을 보고 이미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 웃으며 물어보는 루가 예쁘고도 미워 잔을 든 오른손에 힘을 줬다. 아무리 그래도 독을 탄 건 모르겠지. 한 순간 싸늘해진 마음을 감추고 미소를 띄운 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게 됐다는 거짓말을 루에게 전했다. 그래? 아쉽게 됐네. 많이 아쉬워? 오늘은 우리끼리 마시고 다음번엔 이와이즈미도 불러서 마시자. 의자에 앉는 루와 시선을 맞추며 오이카와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즐거운 듯 웃으며 술잔을 들고 살짝 잔을 부딪힌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독을 마신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심장이 멈추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간 심장이 덜컹했지만 오이카와는 언제나 그랬듯 평온을 되찾았다.

 


   쓰러진 루를 본 오이카와는 예상과 다르게 멍한 기분이 들었다. 너는 심장이 멈춰도 예쁘구나. 오이카와는 자기도 모르게 루를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다. 흰 이불 위에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눕혀진 루를 보자 문득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죽었다가 살아나서 로미오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루에게 우리는 안 그럴 거야, 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갑자기 오이카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엔 흐느끼다 결국엔 엉엉 울며 루의 이름을 부며 울게 된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의 팔을 볼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어 토오루. 순식간에 눈을 뜬 루가 오이카와를 밀쳐 눕히자 눈물로 붉어진 갈색 눈엔 환희에 찬 분홍색 눈이, 보기 좋게 휜 분홍색 눈엔 후회와 혼란에 빠진 갈색 눈이 보였다.
 
   "토오루."
   "네가 원하는 대로 됐으니까 좋아해야지."
   "루, 너, 다 알고 있었."
   "전부 다 알고 있었어."

   모르고 싶어도 그렇게 안절부절 티를 냈는데, 모를 리가 없지. 매몰차게 말을 하면서도 루는 다정한 눈빛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토오루. 이럴 정도로 내가 좋아?"
   "내가 하지메랑 결혼하는 것보다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았어?"
   "대답해봐 오이카와."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불리자 오이카와는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지만 이내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이 루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내가 진짜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오이카와 토오루.

   "나도 너 좋아해."

   자신을 좋아한다는 루의 말에 오이카와의 눈물이 멈췄다. 울고 있지만 말고 키스라도 해봐. 다른 것도 해도 돼? 안 될게 뭐 있어,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는데. 말하지 마. 싫어, 평생 놀릴래. 오이카와가 루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를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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