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rthday]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쿨리의 눈꺼풀너머로 스며들었다. 재촉하는듯한 그 빛에 응해 눈을 뜬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배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이물감 때문이었다.
"헤레이스."
자신의 이름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 귀를 쫑긋 하고선 통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응. 기특한 고양이군. 틀림없이 나더러 더 누워 쉬라는 무언의 표현일거야.
모든게 다 완벽했다. 방문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고소한 냄새 빼고는.
"...아. 애플파이."
그래 맞다. 오늘은 그 날이었지. 아저씨 아줌마는 일이 있어 집을 나간 지 3일이 다 되어가니까, 이 냄새는 토가인가-라고 생각한 순간-고요한 방에 노크소리가 울렸다.
"아가씨, 토가에요. 일어나실 시간이랍니다! 맛있는 애플파이가 준비되어 있어요."
고맙지만, 토가, 나 지금 한발짝도 못 움직이겠는걸. 내 배 위에서 진정한 안식처를 찾은 이 잠많은 고양이때문에 말이야.
"고마워. 하지만 오늘은 내 방에서 먹을래요. 가져다 줄 수 있어?"
"당연하죠! 당연하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가씨!"
얼마 후 토가는 내 방 테이블에 다즐링과 함께 애플파이를 차려놓았다. 애플파이를 담은 접시와 티컵은 한 세트인 듯 청색바탕에 은으로 장식되어있었고, 그 옆엔 고급스런 은식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가씨만 드시면 되니까 일부러 작은 크기로 구웠어요!"
칭찬을 기다리는 듯 올망올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토가를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쿨리는 이내 미소지으며 말했다.
"항상 고마워. 토가."
그 말을 들은 집요정은 단번에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동동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크레이든의 토가는 복받은 집요정이에요! 아가씨를 모시는 토가는 복받은 집요정이에요!'라고 연신 외치면서.
"토가. 같이 식사하지 않을래?"
"그 무슨 당치도않은 소리세요! 아가씨와 겸상이라니! 세상에! 부디 거두어주세요! 그리고 토가는 이미 토가의 아침을 해치우고 난 뒤랍니다! 그럼 이제 내려가야겠어요!"
오, 이런. 내 한마디에 펄쩍 뛰며 빠르게 퇴장해버린 토가였다. 이제 익숙하지만...혼자 먹기 싫었는데 말이지. 특히 이건.
"애옹."
짜증스러운 듯 연신 뒤척이던 헤레이스가 짧은 울음소리와 함께 사지를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폈다. 몇번 앞발로 얼굴을 다듬더니 훌쩍 침대아래로 뛰어내린다. 아, 이제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겠군.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 매무새를 다듬곤 테이블에 앉았다.
의자가 차가웠다.
방금전까지 감싸고있던 이불의 온기가 떨어져나간 뒤라 그녀의 몸이 짧게 부르르 떨렸다. 찻잔을 쥐고선 소량의 다즐링을 목으로 넘겼다. 찻잔을 내려놓은 쿨리의 시선이 애플파이로 향했다.
접시위의 애플파이는 자르르 흐르는 윤기를 가지고 있었다. 토가의 요리솜씨로 탄생한 그것은 분명히 맛있을 터였다. 쿨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크레이든 가(家)는 생일날 케이크대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내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애플파이는 쿨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오웬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오웬의 생일은 원래 칠면조였지...'
쿨리가 크레이든 가에 들어오기 전, 오웬의 생일에는 원래 칠면조를 먹었다고 했다. 크레이든 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마저도 좋아하는 음식이 없었던 오웬이 내뱉은 "아무거나" 라는 말에 어영부영 정해진 거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웬은 쿨리가 이 집에 오게 된 후 갑자기 애플파이로 바꿨음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래서 쿨리의 생일에도, 오웬의 생일에도 항상 애플파이를 먹게 된 것이었다. 쿨리는 순수하게 좋아했지만, 곧 침울해졌다. 11살이 된 오웬이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기억에도 없는 아주 어릴적부터 늘 오웬은 함께였다. 그녀주위의 또래는 오웬 한 명이었고,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입학한 기숙사제 학교는 그를 쿨리에게서 떨어뜨려놓았다.
가지말라고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었다. 그에게 자신이 뭐라고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그리고 학교는 학교였다. 오웬이 신경쓰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저 역까지 그를 배웅하는것이 쿨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괜찮아. 방학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있는 걸. 어떻게 알아봤는지 저조해진 쿨리를 달래며 오웬이 건넨 위로였다. 항상 오웬은 쿨리보다 쿨리를 잘 알았다...하지만 그의 생일날마다 벌어지는 이런 해프닝은 그녀의 기분을 해마다 가라앉게 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내년은 쿨리도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될 터였다. 오웬없이 맞이하는 그의 생일도 이젠 오늘이 마지막이다. 작년과 제작년에는 크레이든 부부와 함께였지만, 오늘은 그녀 오롯이 이 특식을 독차지하게되었다. 원치 않았지만.
애플파이는 달았지만, 그뿐이었다.
기숙사에서 다음 수업 준비를 하던 오웬의 눈에 파란 안개로 만들어진 듯한 백조가 비쳤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것에서 쿨리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Happy birthday, Owen."
오웬의 주변에서 몇번 배회하던 그것은 다시 기숙사 창문을 통과해 날아갔다. 그는 끝까지 부드러운 눈길로 그 백조를 쫓았다.
"오웬, 그거 패트로누스지? 맞지? 그런데 패트로누스가 말도 할 줄 알아? 난 오늘 처음 봤는 걸..."
넋을 놓고 함께 패트로누스를 쳐다보던 오웬의 룸메이트인 허핑턴 멘허스트가 넥타이를 고치며 물어왔다.
"쿨리의 인사법이야."
"쿨리? 쿨리가 누군데?"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환한 미소와 함께 그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