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 그 끝에서
드림합작 ‘우울’
세란 x 우월
右月
문득 다시 우울함에 잠겨버렸다. 너와 함께 하는 동안 서로 ‘우울’에 대해서 잊은 줄 알았다.
완전히 벗어난 줄 알았는데 문득 혼자 있는 시간에 생각해보면 나는 너 없는 시간은 항상 우울했던 것 같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이라…,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우울은 결국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감정이니까. 결국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우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우울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 물론 주위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너와 내가 한동안 그 우울 속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너와 나는 원망과 증오 속에 살아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 사람을 저주하면서 그 우울함을 버티며 살아왔다. 그래, 너와 나의 우울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무거웠을지도 몰라.
그러다 문득 너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기 위해 찾아갔던 그 곳에서 나는 너를 처음 만났었다.
“월, 왔어?”
“아, 쌤! 오랜만?”
“기분이 좋아 보이네, 오늘은?”
“아,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저 사람 누구에요? 이름이라도 알려주면 안돼요?”
“안 돼.”
“아, 쌤! 너무 단호박이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에는 나 혼자 일방적으로 너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자, 지난주는 어떻게 보냈어?”
“저 분 이름이 뭐에요?”
“환자의 정보를 함부로 막 얘기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 너무해….”
“궁금하면 직접 묻지 그래?”
“아… 천재다. 그럼 다음 상담 언젠지 알려주시면 안돼요?”
“흐음…”
그때의 너는 내 눈에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네가 이 곳에 올 시간에 맞춰 와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기도 하고, 항상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척 하며 너에게 사탕을 한 가득 챙겨주기도 했다. 이후로 꾸준히 인사하는 나를 종종 무시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봄꽃이 그 예쁜 낙엽마저 지고 눈 내리던 어느 날, 너는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었었다.
“최…세란.”
“응? 네?”
“…전에 물어봤었잖아. 내 이름.”
“아… 아! 대박… 대박…”
“……그리고 난 그것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아.”
“저는 우 월이에요! 월이요! 달 월! 지금 괜찮으면 저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요?”
그 당시 너는 내게 어떻게 말을 걸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사람에 대한 혐오가 컸었다. 나만한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더 심하다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어느 날에 같이 웃기도 했었지. 그 땐 무슨 사연이었는지 몰랐지만 너는 유일한 가족인 네 형을 꽤나 미워하는 것 같았다.(후에 그게 애정인 것을 알아 챈 내가 ‘바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리고 나 또한 가족을 지극히 싫어하던 사람이었고, 너와 꽤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려보면 둘 다 자기 할 말만 했던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와 이야기할 때는 꼭 내가 가진 그 우울함이, 어둠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좋아해.”
그리고 네 첫 고백에 나는 눈물을 쏟았었다. 네 어둠으로도 버거울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너는 나처럼 어두운 사람을 만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너와 나는 비슷한 사람이니까 우리 잘 맞지 않을까? 하면서도 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너도 그랬겠지. 너와 나는 비슷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왜 너와 내 생각마저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자기야, 거기 그것 좀 가져다 줘!”
“어, 이것만 해놓고.”
그 후로 너는 네 형의 집에서 나와, 나랑 함께 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마치 우리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라도 한 것 같았고, 우린 꼭 함께하면 평생 행복을 누릴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또, 우울과 어둠을 물리칠 생각을 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 옆에 누군가 필요했던 너와 나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했다. 물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너는 형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방학이라 단기 알바가 들어올 때 이외에는 이렇게 너를 회사로 배웅하고 우울함에 잠겨있고는 한다. 매일, 매일 같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몰랐었는데, 너는 회사 일로 꽤 예민해져 있었다.
“왔어?”
“응.”
“일 많이 피곤하지?”
“응.”
“밥 먹을래…?”
“어.”
“응…. 끓이기만 하면 돼. 옷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어!”
“후, 알겠어.”
오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너와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세상에 몸을 던져 살고 있는데, 왜 더 어둠에 빠지는 기분일까. 왜 다시 ‘우울’이라는 녀석과 대면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세상에 발을 뻗고 사람을 만날 용기가 생기면 행복은 금방 찾아오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밥을 차려주며 네 맞은편에 앉아 걱정스레 물었다. 너는 한동안 밥을 먹으면서 말이 없었다. 한동안 잘 버티던 너와 나였는데…. 지금은 너도, 나도 누군가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유독 생각이 많았던 나만큼 너 또한 그랬을까. 너도 이 어둠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해서 슬펐을까. 나는 한참을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밥을 먹는 네 모습을 바라봤다. 너는 밥을 다 먹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도는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월…”
네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쏟아져 내렸다. 네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는 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네 뒤로 다가가 너를 안고 너를 다독였다. 너도, 나도 함께하니까 행복한 척 했구나. 사실 둘 다 이 어둠에, 이 우울함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문득 문득 찾아오는 우울함에 다시 행복이 멀어 보이는데 서로의 행복을 위해 다시 서로의 아픔을 감추었구나. 나도 그런 너를 안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바보….”
“……”
“둘 다 바보야…. 세란…아.”
“…응.”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너무… 너무나도 사랑해. 내 슬픔에, 흐… 네가 빠지지 않길, 바랄만큼.”
처음에 너와 나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어서, 서로에게 편히 의지 할 수 있어서 서로를 사랑했다. 서슴없이 내 아픔을 꺼내놓기도 하고, 네가 던져놓은 아픔을 바라보기도 하고. 우린 그렇게 우울함을 나누었었다. 그러면서 우린 행복을 찾은 줄 알았다. 그리고 행복을 찾으면 ‘우울’과 ‘슬픔’은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혼자 있으며 생각했던 것이지만 ‘우울’도 하나의 감정이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에만 휩싸여 그 감정을 감정이 아닌 벗어나야만 할 ‘어둠’으로 생각했다. ‘우울’도, 심지어 ‘행복’마저도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감정일 뿐인데 우린 그걸 벗어나려고, 찾으려고 고민하고 노력하고 절망만 했다.
이 순간도 어쩌면 당연한 건데. 그렇잖아? 너와 내가 만나서 행복해졌지만, 꼭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거잖아. 우울할 때도 있는 게 당연하잖아. 살아있으니까 느낄 수 있는 거였어.
“우리 엄청 멍청했다, 그치?”
나는 네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말했다. 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너를 안고 그렇게 울었다. 우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살았어. 행복해지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줄 알았지. 그리고 서로라는 행복을 찾고 이제 우울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어.
“살아 있잖아. 여기, 이렇게….”
“고마워. 내 옆에 살아줘서.”
“나도, 나도 고마워.”
살아있으니까, 죽고 싶기도 한 거겠지.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너와 내가 함께 살아있으니까 느낄 수 있는 거였어. 그렇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쭉 함께 살자.”
이 우울함이 설령 우리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행복은 우울한 것처럼 다시 돌아오니까.”
적어도 너와 나는 함께 있으니까, 서로에게 위로가 되니까 괜찮아. 살아 있잖아. 사실 살고 싶었잖아. 혼자 살기 싫었던 거지, 정말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잖아.
“이렇게 우울했으니까 내일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네가 있으니까…”
“근데, 그거 알아?”
“응?”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 버틸 수 있었어.”
“예쁜 말만 하네, 우리 세란이? 다 컸어, 아주.”
“또, 또 까분다.”
“간만에 까부는 거지, 뭐. 흥, 사랑해.”
“…나도.”
우리 이 우울 끝에서 함께 손잡고 있자. 그럼 다시 행복이 올 테니까. 꼭 계절이 지나고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야. 모든 감정은 돌고 도는 거니까. 고마워. 이 모든 걸 알게 해줘서. 사랑해. 나의 전부, 나의 행복. 네가 설령 내 우울함이 된다고 하더라도 너를 사랑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