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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달이 한가운데에 떠있고 기온이 낮아진 시간대, 유린은 나이트워커의 연무장에 세워진 과녁 앞에 서있었다. 그녀 본인이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 가운데에 꽂힌 표창들을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시그너스 기사단 소속 나이트워커 상급기사 유린은 최근, 굉장히 우울했다. 우울의 이유는 단순했다.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랑 때문에 우울했다.

 

 

   1.

   그녀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직속 상사, 나이트워커 기사단장 이카르트를. 어째서, 어쩌다가, 라고 물으면 대답을 ‘첫눈에 반했다.’ 라는 대답을 내뱉을 정도로.

 

   노블레스 때에, 즉 견습생 시절에 본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은 머릿결이,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보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반짝이는 갈색의 눈동자가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검을 내려놓고 달려가 그에게 손을 뻗고 싶었다. 그렇지만 노블레스의 신분으로는 감히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기사단의 기사단장중 한명이었다. 그가 나이트워커의 기사단장이란 걸 알았을 때, 그녀의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검 대신 아대와 표창을, 소울마스터라는 칭호 대신 나이트워커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오직 그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러나 그녀는 상급기사가 되어서도 그에게 손을 뻗지 못했다. 그가 기사단장이 되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을 아직도 그가 잊지 못했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몰랐더라도 (호크아이를 제외한) 모든 기사단장들과 기사들이 쉬이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인 것은 당연했다.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 것인가. 그녀는 상념에 생긴 듯 눈을 감았다.

 

 

   * 2.

   모험가 시절에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짝사랑은 굉장히 괴로운 거라고. 그러나 그 시절에는 연애 감정으로 가지는 사랑을 알지 못했기 나는 알지 못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가족인 한 오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단장님께 가진 감정이 ‘사랑’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왜 하필 다른 기사 중 한 명도 아니고, 기사단장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왜 하필 그게 이카르트 단장님이셨는가. 그 것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유린.’

 

   아까 전에 제 이름을 부르시던 단장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목소리에 따라 빠르게 뛰던 심장소리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 했다. … 어리석게도 나 자신이 잊고 싶지 않아 애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3.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헉,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나 뒤를 돌았다. 그였다. 이카르트, 그가 그녀의 뒤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됐다. 그보다는 질문에 답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네…! 잠시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열심히 하는군.”

 

   당신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차마 낼 수 없었던 그녀는 그저 간신히 입가에 작게 미소만을 지으며 그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누가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는 평소와 다르게 가면을 쓰지 않은 채였다.

 

 

   * 4.

   달빛 아래에서 단장님의 외모가 빛을 발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단장님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짧은 검은색의 머릿결도, 갈색의 눈동자도 이전과 변함이 없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5.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셨던 걸까. 단장님은 조금 인상을 찌푸리시더니, 멍하니 바라보는 내 대신 먼저 입을 여셨다.

 

   “오늘은 아침 일찍 파견이 있을 텐데? 그러니 어서 들어가 눈이라도 붙여라.”

 

   …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듣던 나는, 내가 들은 말에 귀를 의심했다. 한 번도 이런 다정한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단장님 입장에서는 다정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려서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것이 들킬 것 같아 대답 없이 고개만 미친 듯이 끄덕였다.

 

   가끔씩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실 때마다, 내가 더 괴로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 때마다 사랑이 커진다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슬펐다. 그 슬픔을 감추고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말아야 하는 것에도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내 우울의 이유는, 이런 감정 안에 있었다.

 

   이곳에 더 있으면 정말로 울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 6.

   “… 바보 같긴.”

 

   그녀가 돌아간 모습을 확인한 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시간에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그녀가 나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에게 그 것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사랑했던 스승님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죄책감 때문에 저 자신의 마음이 그녀에게로 돌아섬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감추려 노력했다.

 

   어리석은 건, 유린이 아니라 나였다. 어린 시절에는 스승님께, 지금은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생각으로 고백할 용기조차 갖지 못하고 외면한 나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괴로울 정도로 시렸다. 조금 전, 달빛에 의해 반짝이던 하늘색과 분홍색이 섞인 투톤의 단발이, 저를 멍하니 올려다보던 녹색의 눈동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려 눈을 감았다. 나는 내 앞에서 등을 돌리던 그녀를 붙잡을 자격도 없었다.

 

   … 최근 계속 느껴왔던 외로움과 우울의 감정은 죄책감과 사랑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제야 깨달은 감정에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우울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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