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및 자해 요소 주의
눈을 떠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백색의 천장이었다. 나는 곧바로 이 장소가 내 집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달갑지 않는 약품의 냄새와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신없는 와중에 팔목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이 억지로 안개를 걷어낸다. 아, 이번에도 돌아왔구나. 깨어난 나를 본 간호사가 의사를 부른다. 나는 그대로 긴 숨을 쉬었다.
나에게 현 상태를 물어보는 의사의 질문은 언제 들어도 우스웠다. 어느 누가 봐도 스스로 손목을 그은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절차상 거쳐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모든 것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건조하게 내뱉는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의사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간신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병실의 낮은 조금 소란스러웠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몇날며칠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나로서는 이러한 일상 소음보단 고요함이 더 익숙했다. 읽고 있던 책을 탁 소리가 나게끔 덮고 대충 옆에 던져놓은 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등에서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은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다.
내가 입원해있는 병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의 손목을 흘겨보고 혀를 차댔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며 화를 낼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창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찬바람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클리브가 찾아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런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뭐라 건넬 만한 말이 생각나질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너 이게, 몇 번째인 줄 알아…?”
“글쎄요. 세어보질 않아서.”
“내가 대답을 받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잖아.”
여루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피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 나에게 그는 강제로 다시 눈을 맞추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내 손을 꽉 쥐었을 뿐이었다. 따뜻한 체온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진다. 마치 둘만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사실은 그렇게 느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침묵은 언제나 클리브가 먼저 깼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이런 짓 안 하면 안 돼? 생각보다 훨씬 멍청하다고 느껴지는 질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던 건지 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내 손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 손을 살짝 비틀었다. 클리브는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눈치를 챈 건지 손에 준 힘을 금세 풀어낸다. 난 그렇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말을 할 때까지 어떠한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항상 세로로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맘대로 되질 않거든요.”
“…….”
“무의식중에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 봐요.”
다음부터 긋지 않겠다는 지키질 못할 약속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 나는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답을 뱉어냈다. 클리브는 그런 나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일 또 보자는 말을 건네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자해 행위 이외에도 여러모로 건강이 나빠져 퇴원시기가 조금 늦춰졌다. 클리브는 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곧바로 돌아갔다. 나는 씻고 나서 망설임 없이 곧장 침대 위에 누웠다. 며칠을 침대에서 생활했지만 이것 이외에는 딱히 할 만한 것들이 생각나질 않았다. 글 연재는 건강상 휴재를 했기에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은 항상 자던 잠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잭이었다. 잭은 무작정 집 안으로 들어와 나를 끌어당겨 가까운 벽에 밀어붙였다. 붉은 눈동자에선 특정한 한 감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왜 찾아왔어요.”
“그걸 말이라고 묻는 건가?”
“답지 않게 목소리가 조금 떨리네요, 잭.”
내 말에 그가 이를 으득 갈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눈에 담아내었다. 꽉 닫힌 잇새 사이로 숨이 빠져나오고 그 뒤로 목소리가 나왔다. 클리브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뭐라 대답할 수 없는 탓에 이번에는 무슨 말로 말문을 막아야 하나 고민하려고 눈을 한 쪽으로 굴렸다. 그리고 턱에 억센 힘이 가해졌다. 내 눈 보고 얘기해.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미간이 좁혀졌다.
“클리브 씨도 이런 질문 했었는데, 대답 들었을 거 아녜요.”
“그건 대답이라고 할 수 없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대로 그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려 목을 쥘 수 있게끔 만들었다. 웬일인지 순순히 내 움직임을 따라주는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도와줄래요?”
나의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한 건지 그에게서 감정 변화가 조금 느리게 드러났다.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난 것은 손이었다. 조르지도 못하고 부들대는 손이 퍽 우스웠다. 나는 언제라도 날 죽일 수 있도록 그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에 힘이 들어갈 순간은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한숨을 쉬었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든 어떠한 말도 쉽사리 꺼내질 못했다.